지난 4일 울산시 울주군 중리마을 중리경로당.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이 무슨 흉한 일이냐"며 혀를 찼다. 앞마당 한 켠에는 너구리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덫에 걸리거나 다친 흔적은 없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너구리 횡사 소동'은 열흘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지난달 말 박 모씨 할아버지네 헛간에 너구리 한 마리가 서성거리다 힘없이 쓰러졌다. 갑자기 나타난 산짐승에 주민들은 그저 기이한 일이거니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울주 중리마을 주민들
한때 "웬 변고냐" 초긴장
사인 피부병 밝혀지자
"몹쓸병 불쌍" 일단 안도
사흘 뒤 마을 아낙들이 또 쑤군대기 시작했다. 너구리 한 마리가 또 마을 길가로 내려와서 죽어버린 것이다. 너구리의 죽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사나흘뒤 다른 너구리 한 마리가 마을로 내려와 죽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30여가구가 모여사는 산골마을은 예사롭지 않은 너구리의 잇단 죽음에 뒤숭숭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산에 누가 약을 놓았다', '굶어죽었다'는 등의 원인 분석과 함께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등의 불길한 전망까지 온갖 추측이 나돌았다. 그 중 '마을 뒷산의 산업단지 공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죽었다'는 고차원적인(?) 가설까지 나왔다.
하지만 제보를 받은 기자가 너구리의 사체를 찍어 울산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에 분석을 의뢰한 결과, 너구리 피부병인 개선충감염이 죽음의 원인으로 밝혀지면서 너구리 횡사 소동은 일단락됐다.
야생동물보호센터 관계자는 "털이 빠진 것으로 보아 개선충감염으로 인한 폐사가 틀림없다"며 "울산에는 너구리 구조 신고가 해마다 150건 정도 들어오는데 이 중 30건 이상이 개선충으로 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개선충 감염은 겨울철 너구리들에게 집중적으로 발병하는 전염병이다.
마을 정인자(69) 부녀회장은 "산업단지 공사 때문이 아니라니 다행"이라면서도 "어쨌든 개발이다 뭐다 해서 먹고 살곳이 없어진 산짐승들이 그런 몹쓸병에 걸린 것 같아 불쌍하다"고 말했다. 권승혁 기자 gsh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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